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그리스 (문단 편집) === 스포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올림피아 제전)] 탄탄한 육체를 숭배하다시피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스포츠]]를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가꾸는 숭고한 행위로 여겼다. 당대 가장 인기가 많던 종목은 달리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팡크라티온]] 등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상대를 추월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행위 자체를 중시했기에 기록을 세우거나 따로 기록하는 종목은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육체 기량을 가장 중요시했기에 공동체의 협력이 필수적인 팀 경기 역시 딱히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이 외에는 경마나 [[전차경주]]가 인기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열광하던 경기들 중에 [[팡크라티온]]이라는 게 있었다. 대충 [[복싱]]과 [[레슬링]]을 섞고 이걸 엄청나게 잔혹하게 만든 버전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두 남성 선수가 알몸으로 링 위에서 싸웠는데, 금지하는 건 손톱으로 할퀴기, 이빨로 깨물기, 눈 찌르기였는데 '''이 3개를 제외한 모든 행위가 허용됐다.''' 말 그대로 [[내가 고자라니|고환을 터뜨리거나]] [[똥침|항문을 찌르는]] 등 그어떤 짓거리를 해도 위의 3개만 아니면 그대로 용납되었다는 뜻. 심판이 옆에서 선수들을 지켜보고는 있었다만 저 3개의 가장 기본적인 금지 규정마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경기 도중 선수가 손톱으로 상대방의 복부를 마구 찔러서 내장이 흘러나와 죽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잔혹성에 비례해서 고대 그리스 세계에는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고 매년 수많은 지원자들이 꾸역꾸역 등장해 팡크라티온 챔피언이 되기 위해 경쟁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 팡크라티온이 현재 [[종합격투기]]의 기원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ncient-olympics_169.jpg|height=3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Jump_-900x600.jpg|height=300]]}}} || 그리스인들은 성소 [[올림피아]]에 모여 4년마다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운동 경기, 즉 [[올림피아 제전]](λυμπιακο γνες)을 열기도 했다. 이 정신을 계승한 축제가 바로 그 유명한 [[올림픽]]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최초의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에 처음으로 열렸고[* 확실한 건 아니다. 디오도로스는 113회 올림피아 제전 3년 차 되는 해에 일식이 있었다고 썼는데, 과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보면 이 일식은 기원전 316년에 일어난 일식이다. 그런데 이걸 토대로 계산하면 제1회 올림픽이 열린 연도는 기원전 765년이다.] 처음에는 종교적 성향이 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가 많아지며 전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참여하는 초대형 규모의 축제로 발전했다. 사람들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몰려드니 당연히 상인들과 예술가들이 사람들을 찾아 올림피아로 향했고, 이 시기의 올림피아 제전은 [[헬레니즘 문화]]의 결정체나 다름없었다. 다만 [[로마 제국]]이 들어오고 유희성과 오락성이 강해졌고,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도의 제전'이라는 이유로 폐지해버렸다. 올림피아 제전이 열리는 시기만큼은 모든 폴리스들이 의무적으로 전쟁을 금지하는 휴전 기간이었다. 폴리스들 간 전쟁이 빈번했던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몇 되지 않는 평화의 시기였던 것이다. 이걸 '에케체이리아(ekecheiria)'라고 부른다. 각 폴리스마다 3명씩 '스폰도포로이(spondophoroi)'라고 하는 선수를 선발해 올림피아로 보냈는데, 선수와 관객들의 통행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웬만하면 모든 폴리스들이 휴전 원칙을 준수하는 게 보통이었다.[* 무조건적인 건 아니었다. 올림픽이고 뭐고 나라의 국운을 걸고 싸우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는 아테네도 스파르타도 이딴 원칙을 지킬 여유가 없어서 거의 안 지켰다.] 올림피아 제전에서 가장 인기 많던 종목은 단연 달리기 경주 '스타디온'이었다. 제1회부터 13회까지의 올림피아 제전에서는 아예 달리기 경기 하나만 치렀다.[* 여담이지만 첫 올림픽 챔피언은 [[엘리스]] 출신의 코로이보스다.] 그러다가 점차 장거리 달리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멀리뛰기, 레슬링, 사륜마차 경주, [[경마]], [[팡크라티온]] 등이 추가되면서 후대에는 23개에 달하는 종목을 두고 겨루었다. 경기에는 '''오직 자유민 남성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여자들은 심지어 참석조차 금지되었다. 여자가 남장을 하고 제전에 참가하면 절벽에 밀어서 죽여버릴 정도로 제한이 엄격했다. 다만 [[헤라]] 여신에게 바쳐진 일부 축제의 경우 여성들의 관람을 허가했다.] 기원전 632년부터는 청소년들을 위한 종목들도 따로 개설되었다. 대부분의 주자들은 나체로 경기에 임했다. 원래는 옷을 입고 했지만 아무래도 옷을 입지 않은 선수들이 성적이 더 좋았고 다른 선수들이 이를 모조리 따라하면서 그렇게 변한 것이다. 몸을 더 매끈하게 만들고 육체미를 자랑하기 위해 기름을 바르는 경우도 있었다. 레슬링도 인기가 많았는데, 엉덩이나 등, 혹은 어깨 이렇게 세 부위들 중 하나가 땅바닥에 닿으면 진 걸로 간주했다. 원시적인 형태의 권투 역시 존재해서 '히마스'라고 하는 가죽 장갑을 끼고 싸웠다. 레슬링에 비해서 훨씬 연령대도 낮고 잔인도도 덜했다고 한다. [[원반던지기]]의 경우 현대의 원반던지기와 거의 비슷했다. [[청동]]으로 만든 무거운 원반을 주로 썼지만 돌이나 철덩어리로 만든 원반을 쓰기도 했다. 대략 무게는 2kg, 지름은 약 21cm로 회전력을 이용해 가장 멀리 던지는 선수가 승자였다. 멀리뛰기의 경우 '홀터레스'라고 하는 납으로 만든 추를 이용해 반동을 주었다. 승마나 [[전차경주]]는 일단 값비싼 말이 있어야 참여할 수 있어서 입문 문턱 자체가 높았다. 그래서 부유한 여성 후원자가 우승한 선수를 후원했을 경우 이 후원자도 우승한 걸로 쳤다. 그래서 스파르타의 공주 시니스카는 이런 방식으로 여성의 몸으로도 올림픽 우승자라는 영예를 누렸다. 참고로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피아 제전의 우승자는 엄청난 영예를 누렸다. 한번 우승을 하고 나면 전 폴리스의 영웅이 되었고, 올림피아와 해당 선수의 고향에는 그 선수를 기리는 조각상을 세워줄 정도였다. 또한 올림피아 제전을 관람하는 일은 꽤나 고역이었다. 제전은 완전히 뜨거운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벌판에서 치러졌고 관객들은 차양도 그늘도 제대로 없는 먼지투성이 광장에서 경기를 관람해야만 했다. 당연히 기력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었고 경기를 치르거나 관람하다가 탈진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